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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진실을 덮은 정치의 그림자: 누구를 위한 '진상 규명'인가?

by 이슈중 202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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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환된 트라우마, 그리고 ‘진상’이라는 이름의 가해-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는 한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159명이 숨지고 195명이 다친 이 참사는 단순한 재난을 넘어 정치, 제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진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진상 규명’이라는 명분 아래 당시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경찰관들까지 감찰과 수사의 대상으로 삼는 최근의 행보는, 그날 그곳에서 사람을 살리려 했던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한 조사를 하고 있는 걸까요? 누구를 위한 진실, 누구를 위한 정의일까요?


📚 목차

  1.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들
  2. 영웅이 피의자가 되는 사회
  3. 또다시 시작된 정치적 '진상 규명'
  4. 세월호에서 반복된 '무한 루프'
  5.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6. 대한민국, 운 나쁘면 죄인이 되는 나라

1.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들

2022년 10월 29일, 할로윈 시즌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자발적으로 이태원에 몰렸습니다. 오랜 방역 조치가 풀린 첫 대규모 야외 행사였고, 이를 주최한 특정 단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초월한 인파가 골목에 몰리며 압사 참사가 벌어졌고,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재난'이 되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소방대원, 구급대원들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며 생명을 구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토로 질식 위기에 빠진 시민에게 입을 맞대 인공호흡을 시도한 20대 순경의 일화는 그날의 처절한 현장을 상징합니다.


2. 영웅이 피의자가 되는 사회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입니다. 당시 심폐소생술을 하고 사람들을 구한 경찰관들조차 최근 경찰청의 감찰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포상은 커녕 징계 가능성까지 열려 있고, 심지어 의원면직(사직서 제출)도 금지되었습니다.

경찰 내부망에는 동료들에 대한 분노의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이 다시 조사의 대상이 되어 그날의 기억을 강제로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 ‘왜 거기 있었냐’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비극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3. 또다시 시작된 정치적 ‘진상 규명’

이미 경찰은 사건 직후 역대급 규모의 특수본을 구성해 서울시, 용산구청, 경찰청, 소방서 등 전방위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용산구청장과 경찰서장을 포함한 23명이 검찰에 송치됐고, 사건은 종결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이 사건을 정권 심판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고, 마치 세월호처럼 끊임없이 사건을 정치화했습니다. 이상민 장관 탄핵 시도, 국정조사, 그리고 결국 이태원 특별법 제정까지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수정된 특별법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고,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특조위가 다시 구성됩니다. 그리고 최근 대통령의 지시로 경찰, 검찰이 참여한 추가 수사가 착수되며,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의 제2막이 시작된 것입니다.


4. 세월호에서 반복된 '무한 루프'

이 구조는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나요?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이미 아홉 차례에 걸쳐 대규모 수사와 조사가 진행됐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은 "완료되지 않았다"는 말로 정리됩니다. 선체 인양에만 1,400억 원, 각종 조사에 868억 원이 투입되었지만, 결론은 “외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모호한 결론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진상 규명은 '종결되지 않는 프레임'이 되어, 무한 정치 싸움과 음모론의 장으로 전락했습니다.

5. 진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진상 규명’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무조건적인 정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마치 지금 당장 무언가 감춰진 악의 실체가 있고, 그걸 밝히기만 하면 정의가 실현될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은 책임 전가와 정치 공세, 한풀이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잘못 없이, 다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소환되고, 심문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의 가족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생명을 살리고도 죄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심정은 어떨까요?


6. 대한민국, 운 나쁘면 죄인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은 사고가 터지면 누군가를 마녀사냥해야만 안심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비극이 일어나면, 그저 '운이 나쁜 누군가'가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프레임이 작동합니다.

그 누군가는 대통령일 수도, 장관일 수도, 아니면 단지 현장에서 땀 흘리던 평범한 경찰관일 수도 있습니다.

진실은 때론 이미 밝혀졌고, 정의는 이미 실현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과 선동이 이를 계속 덮고 끌고 가는 한, 아무리 많은 수사와 조사를 반복해도 ‘완전한 진상 규명’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맺음말: 이제는 진상 규명이 아닌, 진짜 '상처'를 보듬을 때

이태원 참사는 비극이었고, 그날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교훈을 ‘재발 방지’라는 실질적 대응으로 승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누구를 또다시 조지고, 잡아들이고, 마녀로 만들기 위한 명분으로 ‘진실’을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가 정의를 말하며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지금, 진정한 추모와 정의는 조용한 곳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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