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정청래라는 사람은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 발 딛고 있는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존재인가.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말을 너무 태연하게 하고, 그걸 또 도덕처럼 들려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7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주는 외교 ‘슈퍼 위크’니까 여야가 정쟁(정치 싸움)을 멈추고 “무정쟁 주간”으로 가자. “전 세계가 한국을 보고 있으니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저부터 솔선수범하겠다.”라는 겁니다. 그는 “국익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겉으로 들으면 너무 예쁜 말이죠. 국익, 단결, 책임, 품격.
근데 그 말을 누가 했냐가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불 붙을 만한 이슈마다 기름통 들고 뛰어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소방관 코스프레를 한 겁니다. “이번 주만은 싸우지 말자”라구요.
이건 그냥 우스운 수준이 아니라,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목차
- “이번 주만 싸우지 말자”: 대체 이 말의 본뜻은 뭔가
- 왜 하필 이번 주인가? ‘외교 슈퍼위크’라는 계산
- 정쟁의 아이콘이 ‘무정쟁’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나
- 국익을 위한다 vs 이미지 관리한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진짜 정쟁을 멈추는 방법
1. “이번 주만 싸우지 말자”: 대체 이 말의 본뜻은 뭔가
정청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외교 슈퍼위크인 이번 주만이라도 여야가 정쟁을 멈추자.”
- “APEC 성공을 위해 무정쟁 주간을 선언하자.”
- “저부터 솔선수범하겠다. 이번 주에는 불가피한 정책 발언만 하고 정쟁적 발언을 삼가겠다.”
이 문장들을 곱씹어 보면 이상한 지점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첫째, “이번 주만이라도.” 왜 기간제예요?
정쟁이 정말 나쁘고 국익을 해친다면, 왜 일주일짜리 금식 기도처럼 잠깐만 멈추자는 겁니까. 국익은 이번 주만 중요하고 다음 주부턴 다시 던지고 물어뜯고 조리돌림해도 된다는 얘기입니까.
정쟁이 문제라면 그건 상시로 자제해야 하는 거고, 그냥 룰처럼 굳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책임 정치”죠.
그런데 정청래의 발언은 정쟁 자체를 문제 삼는 척하면서 사실은 “카메라 들어오는 이 며칠만 사고 치지 말자”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건 진심의 언어가 아니라 관리(Management)의 언어입니다.
둘째, “저부터 솔선수범하겠다.”
솔선수범은 말로 하는 게 아니고, 과거 기록이 증명해야 합니다. 근데 본인이 국회에서 불씨를 키워 온 핵심 인물인데 이제 와서 ‘내가 먼저 조용히 하겠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건 반성이라기보다 면죄부 요구에 가깝습니다. 국민한테 “내가 조용히 있으면 나 착한 거 인정해줘”라고 조건을 거는 거예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몰라요. 근데 ‘선언’ 자체를 또 언론 플레이로 씁니다. 그러니까 쇼라는 겁니다. 야당도 “정쟁 일으킨 장본인이 무정쟁을 말하는 건 위선 쇼”라며 일축한 이유도 그 포인트죠.
2. 왜 하필 이번 주인가? ‘외교 슈퍼위크’라는 계산
정청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 이번 주는 말레이시아에서 한-아세안 정상회의, 경주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 굵직한 외교 이벤트가 줄줄이 열린다.
- 미국, 중국 등 주요국 정상급 만남이 이어지고 심지어 미·중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 그러니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번 주만이라도 전 세계인 앞에서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이번 주는 외교 쇼케이스라니까 국회는 배경음으로 깔끔하게 나와라.
이건 굉장히 흥미로운 프레임입니다.
겉으로는 “국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미지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해외 정상들이 경주에 모여 있는 동안, 기자단이 다 들어와 있는 동안, 국회에서 서로 멱살잡이하고 피칠갑으로 싸우는 그림이 생방송으로 나가면 곤란하다는 거죠. 그래서 “조용히 해. 이번 주만.”입니다.
즉, ‘정쟁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 ‘정쟁 화면의 노출 타이밍’이 걱정인 거예요.
국익=국격=대외 이미지 라는 계산식 자체는 정치적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솔직해야 합니다.
“APEC 때 외신 앞에서만 싸우지 말자”라고 말하면 차라리 솔직하죠. 그런데 그걸 “국익”으로 포장하니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역겨운 거예요.
3. 정쟁의 아이콘이 ‘무정쟁’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나
이 대목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정청래는 여의도에서 ‘전투형 정치’로 유명합니다. 그는 상대 정당을 향해 극단적인 단어를 쓰고, 언론을 “조작 세력” 식으로 몰아붙이며 갈등을 키워 관심과 결집을 뽑아내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는 여야를 막론한 공격적 언사의 반복 속에서 정청래가 항상 최전선 마이크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미지입니다. 이건 국민의힘 측에서조차 “정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라고 반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부터 정쟁성 발언을 삼가겠다”고 말하면 어떤 느낌이 드냐면,
불을 붙인 본인이 소방복 입고 나타나서 “이제 그만 타올라라”라고 훈계하는 꼴입니다.
게다가 “무정쟁 주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너무 가볍습니다.
정쟁이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 피로감의 상당 부분은 날 선 말, 모욕적인 언사, 선동식 구호에서 옵니다. 국민은 그 소음을 매일 듣고 살아야 하거든요. 그 소음의 ‘메가폰’을 쥐었던 당사자가, 본인 입으로 “이번 주는 무정쟁 주간이야”라고 선포하는 순간, 그건 반성이 아니라 자화자찬으로 들립니다.
“봐라, 내가 시키면 국회도 조용해질 수 있어.”
결국 주도권 선언입니다. “정쟁을 없애겠다”가 아니라 “정쟁의 ON/OFF 스위치는 나한테 있다”라는 메시지죠. 이건 통합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입니다.
4. 국익을 위한다 vs 이미지 관리한다
정청래는 “외교의 최종 목표는 국익이고, 국익 앞에서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말을 믿을 수 있느냐입니다.
왜냐면 국익을 지킨다는 건 평시에도 상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사법부건 언론이건 무차별로 갈아버리는 식의 언어폭력을 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하거든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내 투자 심리와 외교 신뢰까지 건드리는 시대에, 정치인의 막말은 그냥 개인 감정 배설이 아닙니다. 이미지는 곧 경제고 외교력입니다. 이건 정청래 본인이 강조한 “외교=경제=국방”이라는 말에서 이미 드러났죠.
그럼 묻겠습니다.
그동안 공격적 언사와 프레임 전쟁으로 상대를 ‘적’ 취급하던 그 방식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됐습니까, 해가 됐습니까?
국익이 그렇게 소중했다면 왜 하필 외교 일정이 없던 주에는 전 국민이 질릴 정도로 갈등을 증폭시키고, 외교 일정이 몰린 주에만 갑자기 “우리는 한 팀”이 되는 겁니까.
이건 진짜 국익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국익을 명분으로 한 이미지 관리에 가깝습니다.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국익을 ‘방패’로 들고 나와 본인에게 쏟아질 비판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려는 기술처럼 보입니다.
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진짜 정쟁을 멈추는 방법
정쟁이 문제인지, 정쟁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야가 부딪히는 것 자체는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의견 충돌은 정상이에요.
문제는 그 충돌을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팩트와 정책을 가지고 싸우는 건 토론이지만, 모욕과 낙인을 던져서 상대를 악마화하는 건 정쟁입니다. 그 차이를 흐려놓은 게 누굽니까. 그걸 정치 생존술로 써 온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그 대표 주자 중 하나가 바로 지금 “무정쟁 주간”을 운운한 그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이번 주만은 싸우지 말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막말 정치 그만하자.” - “외신 앞에서 체면 좀 챙기자”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부터 기본 예의를 지키자.” - “저부터 솔선수범하겠다”가 아니라
“제가 했던 저열한 언사들에 대해 사과한다.”
그게 먼저였어야 합니다.
정쟁을 멈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단합니다.
정쟁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더 이상 국회의 마이크 앞으로 보내지 않는 것.
정청래가 정말로 정쟁을 끝내고 싶다면, ‘일주일짜리 휴전 선언’을 언론플레이할 게 아니라 본인부터 그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 던져진 메시지, “무정쟁 주간”은 국민의 피로를 걱정한 게 아닙니다.
국민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외교 무대 이미지를 관리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일 뿐입니다. 저는 그걸 위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위선에 국민이 더 이상 속지 않는다는 걸 정치권은 알아야 됩니다.